어떤 산책, 아주 먼 시간의 나를 만나는
이건수 │ 미술비평·전시기획
화가는 길을 걷는다. 계절에 따라, 시절에 따라 정든 거리를, 익숙한 골목을 걷는다. 걸으면서 들어오는 시선의 파편들은 하나의 개별적인 정물(still life)이면서도 고정된 현재를 벗어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지금 그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추억의 길로도, 상상의 길로도 연결될 수 있는 비현재적이고 초현실적인 장면의 시작이다.
이 순간 진민욱은 시간을 채집한다. 기억을 채집한다. 꽃과 새, 혹은 기물과 풍경 같은 채집한 이미지들은 시간과 운동의 순서대로 배열되고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과 필연의 유대 속에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구성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 서사(이야기) 구조의 진폭을 확장하고 전개시킴에 있어서 현대적 파홀(parole)과 고대적 랑그(langue)를 교차시키며 진행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시각적 언어와 소재, 내용을 전통적인 안료와 비단 채색 기법으로 표현하겠다는 의지는 그 반대의 방법론―과거의 고답적 소재와 주제를 우리 시대의 안료와 기법으로 표현하는―보다 훨씬 더 큰 호소력과 설득력으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 그것은 죽어 없어진 고어로 부르는 유행가가 아니라 생생한 현대어로 부르는 고대적 색채의 시가인 것이다.
인간의 오욕칠정은 이렇게도 항구적인 것인가. 진민욱은 개인적 일상사의 연원이 되는 정서적 공감을 3000년 전의 인간들이 노래한 《시경(詩經)》에서 발견하고 자신의 작업적 모티프와 사유의 편린들을 고대적 시정에 연결 짓고 이어가면서 개인사를 초월한 보편성으로 역사와 기억을 재구성하고 있다.
‘시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심오하다’는 《시학(詩學)》의 전언이, 시대적 사건을 플롯이라는 컴포지션의 형식적 조합을 통해 나열적이고 평면적인 속성을 뛰어넘는 의미 있고 실감나는 개연성의 사실로 변화시키는 예술의 긍정성을 인정한 것이라 했을 때, 진민욱은 자신의 시간-이미지들을 현대적인 화면구성과 다층적인 서사구조 속에서 자동기술적으로 해체하고 변용하면서 다층적이고 심층적인 다성악(polyphony)적 구조의 설치적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이 단일 화폭의 독립적인 화면이든 다양한 변형 화폭의 구성으로 이어진 설치적인 벽면이든 간에 단일시점이 아닌 다(多)시점으로 포착된 이미지들의 재구성과 조합으로 이루어진 화면은 단성악(monophony)적 구조를 능가한 화음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화면에서 보이는 시점의 이동은 서구 입체주의의 탈(脫)원근법적인 시점과 산점투시의 전통적인 퍼스펙티브도 연상시키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묘사된 대상의 형태적 사실성과 시공간적 허구성 사이의 침윤, 기하학적 색면의 도입과 공간 전체와 관계하는 여백의 평면성에 대한 재해석 같은 것을 통해 드러나는, 전통회화의 진부함을 벗어나게 만드는 시점의 참신한 운용이라 할 것이다.
작가는 주제의 다층적인 시의(詩意)를 표현하기 위해 병풍 형태의 도입으로 ‘겹과 층’이라는 기하학적인 추상 구조의 형성과 함께 ‘안과 밖’이라는 현상학적인 구조의 형상화를 한 화면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형식적 시도를 해왔다. 최근의 작업에서는 화면 위에 색면의 띠와 평면적인 도형을 부가함으로써 화면의 비율을 조정하는 등 직접적인 화면 접근을 거부하고 방해하는 듯한 일종의 ‘낯설게하기’ 기법을 시도하면서 화면의 전경과 후경의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구조를 부각시켜 보여준다. 채색의 방법에 있어서도 반투명의 비단이 지니고 있는 촘촘한 수평적 결 조직과, 화면 앞과 뒤의 수직적 층을 이용한 색채의 중첩을 통해 현대 모노크롬 미니멀 추상이 집중하고 있는 깊이 있는 질감의 화면을 모색하고 있다.
처음부터 한결같이 지속적으로 작가는 화면 속에서 전통과 현대, 개인과 사회, 시경(詩景)과 실경(實景), 상상과 현실이 다층적으로 공존하는 장을 구성하려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현대적인 소재와 내용, 전통적인 기법과 형식의 끈을 놓지 않고 시도한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내용적으로 현대적인 언어와 일상적인 소재로 시작된 화면은 고대적 시적 취의와 함께 인간의 항구적인 존재적 진실에까지 다다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형식적으로는 변형캔버스 같은 자유로운 화면구성이 고답적 형식의 틀을 해체하는 듯 보이지만 화면에서 풍기는 전통적인 안료와 채색의 순수하고 온건한 감수성은 전통이 크게 훼손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다는 안정감을 부여한다.
작가는 끈과 띠라는 말로 조합된 < 유대(紐帶) >라는 단어를 조응(correspondance)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어찌 보면 대응, 상응, 일치, 또는 부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단어는 그의 모든 작품의 바탕이 되는 근본적인 언어일 것이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채움과 비움, 안과 밖, 앞과 뒤, 구상과 추상, 글과 그림, 수묵과 채색이 대립하지 않고 서로 자기를 비추면서 균형 있게 상생하는 화면.
전통과 현대의 유대라는 현대 한국화의 현실적 문제의식 속에서 그 대립적이고 이항적인 요소들은 연약한 대화(fragile dialogue)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진민욱의 화면 속의 고아하고 맑은 시정의 정취와 격조는 현실 속에서 잊혀진, 현실적 풍경의 뒤에 가려져 있는 나와 세계의 진실을 조용한 나레이션으로 상기시켜준다. 그가 걸으면서 마주한 실경이 시경이 되는 순간, 우리는 회화가 감각의 시간대를 뛰어넘어 역사 보다 더 철학적이고 심오한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의 상상, 산책, 주변에 대한 관심, 문학과 회화사로 관심을 넓혀가는 행위는 내 작업에서 아주 중요하다. 나는 회화기법과 안료를 이해하기 위해 고화(古畵)모사를 하고 전통방식의 장황(裝潢)을 하고 이 과정에서 이해한 고화의 조형미를 회화적이고 현대적인 방법으로 만들어 왔다. 변형캔버스나 이번에 들어가기 시작한 띠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